지명으로 만든 슬픈 말놀이
미가 1장 후반부는 한글로 읽으면 낯선 지명이 줄줄이 나와서 그냥 넘어가기 쉬워요. 그런데 히브리어로 읽으면 이 부분은 마을 이름 하나하나로 만든 말놀이예요. 우리말로 치면 "울산에서 울고, 대구에서 대굴대굴 구르고" 같은 식이에요.
재밌는 말장난 같지만 내용은 슬퍼요. 사람들이 자랑하던 이름과 정체성이 오히려 심판을 알리는 표지판이 된 거예요.
시골 선지자가 도시의 권력자들에게 던진 말,
그리고 마지막에 남긴 하나의 질문
미가는 예루살렘 궁궐이 아니라 모레셋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 출신 선지자예요. 같은 시대의 이사야가 왕궁을 드나들던 도시 선지자였다면, 미가는 흙냄새 나는 시골에서 올라와 도시의 부자들과 권력자들을 향해 외친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 책을 천천히 읽다 보면, 말놀이와 반전, 수백 년 뒤까지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곳곳에 숨어 있어요. 1부에서 큰 그림을 보고, 2부에서 숨은 장면들을 하나씩 들여다봅니다.
시골 선지자의 세 번의 "들으라"
미가는 유다의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시대(주전 8세기 후반)에 활동했어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무너지는 걸 직접 본 세대죠. 이 책은 "들으라"로 시작하는 세 번의 설교(1:2, 3:1, 6:1)로 짜여 있고, 매번 심판의 말씀 뒤에 소망의 말씀이 따라와요.
미가서의 핵심은 결국 한 문장으로 모여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더 비싼 제물이 아니라, 정의롭고 인자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걷는 삶이라는 것(6:8). 그리고 그 요구를 다 채우지 못하는 우리를 끝내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이 책의 마지막 얼굴이에요.
말놀이, 반전, 그리고 수백 년을 건너는 연결고리
미가 1장 후반부는 한글로 읽으면 낯선 지명이 줄줄이 나와서 그냥 넘어가기 쉬워요. 그런데 히브리어로 읽으면 이 부분은 마을 이름 하나하나로 만든 말놀이예요. 우리말로 치면 "울산에서 울고, 대구에서 대굴대굴 구르고" 같은 식이에요.
재밌는 말장난 같지만 내용은 슬퍼요. 사람들이 자랑하던 이름과 정체성이 오히려 심판을 알리는 표지판이 된 거예요.
미가가 죄를 지적하자 사람들은 "그런 설교 좀 하지 말라"며 막아요(2:6). 그러면서 미가는 씁쓸한 농담을 던져요.
"사람이 만일 허망하게 행하며 거짓말로 이르기를 내가 포도주와 독주에 대하여 네게 예언하리라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이 백성의 선지자가 되리로다"(2:11)
쉽게 말하면 "술 잘 나오는 얘기 해주면 그 사람이 너희 인기 설교자가 될 거다"라는 거예요. 😄 3장에서는 한술 더 떠서, 먹을 걸 주면 "평강!"을 외치고, 안 주면 전쟁을 선포하는 선지자들이 나와요(3:5). 설교 내용이 사례비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미가 4:3의 "그들이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는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평화의 구절 가운데 하나예요. 재밌는 건 이사야 2:4에도 거의 똑같은 문장이 있다는 거예요. 같은 시대 두 선지자가 같은 환상을 전한 거죠.
그런데 요엘 3:10에는 이 문장이 정반대로 뒤집혀 나와요.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심판의 날, 하나님과 싸우려는 나라들을 향한 풍자예요.
그리고 오늘날, 뉴욕 유엔 본부 정원에는 칼을 두드려 보습을 만드는 사람의 동상이 서 있어요. 1959년 당시 소련이 기증한 작품인데, 무신론 국가가 선물한 동상의 주제가 바로 이 미가서 말씀이에요.
미가 6장에서 백성은 하나님께 이렇게 물어요.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야 할까요?" 그리고 스스로 답을 내놓는데, 가격이 점점 올라가요.
사람들은 하나님을 더 비싼 값을 불러야 만족하는 분으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은 가격표가 아니라 삶이었어요. 여기서 "인자"는 룻기와 요나서에도 나오는 그 헤세드, 변함없는 사랑이에요.
미가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어요(5:2). 약 700년 뒤, 이 예언이 다시 등장해요.
동방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묻자, 헤롯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불러요. 그들은 망설임 없이 미가 5:2를 인용하며 "베들레헴입니다"라고 답해요(마 2:5-6).
그런데 이상하죠?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은 걸어서 두세 시간 거리인데, 그 주소를 정확히 아는 성경 전문가들 중 아무도 가지 않아요. 성경을 모르던 이방인들만 별을 따라 먼 길을 와서 아기 예수께 경배해요. 요나서의 이방 선원들이 떠오르는 장면이에요.
미가는 아주 과격한 설교를 했어요.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수풀과 같이 되리라"(3:12). 성전이 있는 거룩한 도시가 무너진다니, 당시로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말이었어요.
약 100년 뒤, 예레미야가 비슷한 설교를 했다가 사형당할 위기에 처해요. 그때 지방의 장로 몇 사람이 일어나 이렇게 말해요. "옛날 모레셋 사람 미가도 히스기야 왕 때 똑같은 말을 했다. 그때 히스기야 왕이 그를 죽였느냐? 오히려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회개하지 않았느냐?"(렘 26:18-19)
그 말 덕분에 예레미야는 목숨을 건져요. 미가의 설교 한 편이 한 세기를 건너 다른 선지자의 목숨을 살린 거예요. 그리고 이 기록 덕분에 우리는 히스기야가 미가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다는 사실도 알게 돼요.
미가라는 이름의 뜻은 "누가 여호와와 같으랴"예요. 그리고 미가서의 마지막 찬양은 이렇게 시작해요.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7:18)
히브리어로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는 미 엘 카모카예요. 미가는 자기 이름을 질문으로 바꿔서 책을 마무리한 거예요. 7장 내내 심판을 전한 선지자가 마지막에 깨달은 답은, 하나님이 다른 모든 신과 다른 이유가 능력보다 용서에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7:19). 유대인들은 지금도 새해(나팔절)에 강가에 나가 이 구절을 읽으며 빵 부스러기를 물에 던지는 전통을 지켜요. 네덜란드의 믿음의 여성 코리 텐 붐은 이 구절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고 전해져요. "하나님은 우리 죄를 가장 깊은 바다에 던지시고, 그 옆에 낚시 금지 팻말을 세우셨습니다." 😄
미가서는 날카로운 심판의 말로 가득하지만, 결국 "누가 주와 같으랴"라는 찬양으로 끝나요. 도시의 불의를 고발하던 시골 선지자는, 그 모든 죄를 바다에 던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책을 덮었어요.
그리고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잡한 것을 요구하지 않으세요.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